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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소금은 영양가가 아니다

우리는미생물 2023. 2. 1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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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영양가가 아니다

빛소금요법, 박경진著

1) 먹는 것보다 배설이 더 중요하다.

동양에서는 예부터 禪과 敎를 분리하였다. 즉, 敎란 지식이나 정보를 넣는 작업이라면, 禪이란 잘못 들어간 지식이나 정보를 닦아내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이 두 가지 일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그 중에서 우선적인 것 또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禪이라고 말해왔다. 그래서 깨끗이 닦아내는 일의 필요성을 무수히 강조해왔던 것이다.

다른 비유로 말하자면, 우리가 쉬지 않고 呼吸을 하는데 그 호흡이란 들숨과 날숨으로 되어 있다. 즉, 몸속에 가스를 내보내는 것을 呼라고 했으며 이 역시 닦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呼를 우선하여 呼吸이라고 하여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吸보다 먼저 말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몸속에 영양을 보충하는 것은 養이라고 하고 몸속의 나쁜 불순물이나 노폐물을 닦아내는 것을 修라고 했다. 여기서도 닦아내는 修가 영양을 보충하는 養보다 우선하여 修養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敎보다는 禪이 더 중요하고 吸보다는 呼가 더 중요하며 養보다는 修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먹는 것보다는 배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간단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敎育하는 곳은 많으나 잘못된 敎育을 닦아내는 禪을 가르치는 곳은 드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살아보니까 어떤 음식이 우리 몸에 영양을 보충해 주며 어떤 음식이 영양을 보충하고 난 찌꺼기를 닦아내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사실 모든 病은 따지고 보면 혈관, 신경, 대장 또는 소장 등에 있는 영양을 태워 공급하고 그 찌꺼기를 배설시키는 수많은 통로가 막힘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통로의 막힘을 깨끗이 닦아 뚫어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식 중에서 어떤 음식이 그 막힌 곳을 뚫어내는 것일까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간단한 생각을 하지 못하여 약이라는 또 다른 음식을 먹어서 막힘의 재료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즉, 병이 나면 몸속의 어딘가에 막힘이 생겼으므로 그 막힘을 뚫을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막힐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약이나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래 그림에서 진리상으로 보면 木, 土, 火는 위로 오르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음식들은 우리의 삶을 나무(木)처럼, 크고 풍요롭게 하고 흙(土, 곤충)처럼 조직적이고 서로 모여 오순도순 살게 하며 불(火)처럼 뜨겁고 활동적으로 살게 한다. 그러나 불이 타고 나면 재가 남고 나무가 죽으면 썩어 부패하며, 흙이 쌓이듯 우리의 몸에 많은 불순물과 노폐물을 남기게 되어 있다. 이런 노폐물을 닦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몸속이 부패하여 病이 되고 죽어가는 것이다.

2) 불순물을 닦아내는 소금, 물, 공기

木(나무)를 먹고 힘을 얻어서 생활하고 나면 木의 불순물이 생기는데 이것을 닦는 것은 金이다. 그럼 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건 바로 素金(소금)이다.

소금은 불순물을 닦아내는 음식이지 절대 영양음식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소금을 영양가로 해석하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에 소금에 有機物(유기물)이나 미네랄 그밖에 영양이 있다면 그것은 영양이 아니고 불순물인 것이다. 즉, 소금이 닦아낸 물질이다. 그것이 불순물인 것을 증명하려면 그 유기물 또는 소금 속에 포함된 불순물을 고열로 태워보면, 그 영양가가 타면서 내뿜는 가스를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스는 유해가스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素金(소금)에는 순수 물처럼 어떤 영양가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앞으로 소금에 대한 쓸데없는 논쟁을 줄이는데 역할을 할 것이다.

그 다음 공기이다. 우리가 마시는 깨끗한 공기는 몸속에 먼지(土) 같은 불순물을 닦아내는 아주 소중한 것이다. 공기를 영양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다음 물이다. 물도 몸속에 있는 불순물을 깨끗이 닦아내는 물질이다. 그러므로 가장 순수한 물도 영양가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 가장 깨끗한 소금, 가장 깨끗한 공기, 가장 깨끗한 물을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선 현대인은 어떤 물이 과연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물이냐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공기가 가장 깨끗한 공기냐고 물어도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소금이 가장 순수한 소금이냐고 물으면 더욱 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金, 氣, 水 이것은 木, 土, 火로 더러워진 우리의 몸속을 깨끗이 닦아내는 음식이다. 즉, 식물성의 독성은 순수한 소금으로, 모든 살코기등 흙과 같은 불순물은 空氣로, 뜨거운 火와 같은 노폐물은 순수한 물로 닦아내어야 한다. 그러므로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은 순수한 공기가 있고 순수한 물이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약수가 있는 산림이 우거진 그런 시골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깨끗한 소금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소금이 아니다. 정성과 지혜로 깨끗이 닦은 소금인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빛소금, 순수한 生氣, 순수한 生水는 오직 깨달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진리를 발견하는 지혜가 있어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지혜가 없다면 3대에 걸쳐 德을 쌓은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지혜도 없고, 부모님이나 조상님이 德을 쌓은 것 같지도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머지 하나는 禮를 차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순수한 金, 氣, 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에게 禮를 갖추고 부탁하여 알 수밖에 없다. 그러나 禮를 분명히 알고 禮를 드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할 것이다.

지혜나 德 그리고 禮는 정신적 영양가인 지식이 아니다. 그 지식으로 생긴 業을 닦아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순수한 물이나 공기가 영양가가 아니듯 순수소금도 영양가가 아니다.

3) 영양가 있는 소금과 순수소금의 차이

분명히 말해서 더러운 물, 더러운 공기, 더러운 소금에는 영양가가 있다. 그러므로 영양가가 있는 소금, 물, 공기는 순수한 소금, 물, 공기가 아닌 것이다. 선맥에서는 순수한 소금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기 때문에 순수한 소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림에서 잘 보면 金, 氣, 水는 아래로 내리는 힘을 갖고 있다. 즉, 몸속에 있는 불순물을 끌어당겨 소변, 대변, 중변으로 만들어 몸 밖으로 내보내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러므로 소금과 공기와 물이 몸속에 있는 여러 가지 불순물을 닦아 보낸다는 진실은 요즈음의 얄팍한 과학적 지식이나 의학적인 상식을 초월한 불변의 이치이다. 따라서 공기, 물, 소금은 생명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3대 생명원소가 되는 것이다. 깨달아 보면,

生氣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생명이고,
生水는 생명들이 대를 이어 살게 하는 생명이고,
빛소금은 생명의 질을 한 차원 높이는 생명이고,
영양가는 생명을 연장하여 생명의 질을 높이는데 필요한 시간을 만든다.

참고로 몇 가지 소개하면 金은 독성을 끌어당기는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유해한 물질인 독들이 있는 것, 구체적으로 말해서 복어알, 초오 또는 부자 같은 독성이 강한 물질 속에는 그 독성을 끌어당기고 있는 金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고열로 태우면 독성은 가스가 되어 날아가고 그 독성을 끌어당긴 金이 재가 되어 남는다. 그러므로 이 재를 연구하여 소금과 함께 만들어 먹으면 몸속에 들어가 몸속에 있는 독을 끌어당기어 몸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선맥에서는 독성이 강한 것들을 고열로 소금 속에 태워 만든 素金을 성인병 또는 독물, 가스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옛날에 우리 할머니들은 잿물로 빨래를 했는데 이 잿물에 발고 金氣가 있으며 그것이 나쁜 때를 빼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순수소금과 순수공기, 순수물을 우리는 빛소금 만들듯이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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